최근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장을 보며 영수증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어본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밀가루나 설탕 같은 원재료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뉴스는 종종 들려오는데, 왜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빵, 라면, 과자 가격은 좀처럼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을까요?

단순히 물가 상승의 흐름으로만 여겼던 그 이면에, 무려 7년 6개월 동안 이어져 온 거대 기업들의 은밀한 '가격 짬짜미(담합)'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오늘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철퇴를 맞고 최대 1조 2천억 원대 과징금이 예상되는 '전분당 담합 사태'의 전말과, 이것이 우리 실생활 장바구니 물가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상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물가의 숨은 지배자, '전분당'은 대체 무엇일까?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분당'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전분당은 우리 식생활과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 재료입니다.

전분당은 옥수수 등을 분쇄해 만든 분말 형태의 '전분'과, 이 전분을 분해해 생산한 '당류'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물엿, 올리고당, 포도당, 과당(액상과당)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전분당이 경제 뉴스에서 이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그 쓰임새에 있습니다. 전분당은 용도에 따라 면류, 제과, 제빵, 아이스크림 등 우리가 매일 먹는 수많은 가공식품의 가장 핵심적인 원재료로 널리 사용됩니다. 심지어 제지나 철강 등 산업용으로도 쓰이는 필수 기초 소재입니다.

즉, 전분당 가격이 오르면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식품 업계의 제조 원가가 상승하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2. 7년 6개월의 은밀한 약속: 시장 점유율 90%의 진실

이렇게 국민 식탁 물가에 직결되는 전분당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에서 심각한 불공정 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공정위 조사 결과, 국내 전분당 제조·판매업체 4곳이 2018년 5월부터 지난해(2025년 예상) 10월까지 총 7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복적이고 조직적으로 판매 가격을 담합한 혐의가 포착되었습니다.

이번 사태에 연루되어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받은 4개 기업은 국내 대표 식품 대기업들입니다.

  • 대상

  • 사조CPK

  • 삼양사

  • CJ제일제당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시장 지배력에 있습니다. 이 4개 업체는 전분당 B2B(기업 간 거래) 판매 시장에서 무려 약 9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이 똘똘 뭉쳐 가격을 통제했으니, 중간에서 재료를 공급받아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중소 식품업체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비싼 값에 전분당을 사 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공정위 산정 결과, 이번 담합 행위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관련 품목 매출액만 총 6조 2,000여억 원에 달합니다.



3. 역대급 철퇴 예고: 최대 1조 2400억 원 과징금의 의미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담합이 아닌, 시장경제를 잠식하는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로 인정될 경우,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를 관련 매출액 6조 2천억 원에 대입해 보면, 산술적으로 최대 1조 2,4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1. 심사보고서 발송: 공정위는 142일간의 조사를 마치고 위법 행위 내용과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4개 사에 발송했습니다.

  2. 방어권 보장 절차: 4개 사는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이내에 서면 의견 제출 등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3. 최종 확정: 이후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확한 관련 매출액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과징금 및 조치 내용이 최종 확정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공정위가 무려 2007년 이후 19년 만에(밀가루 담합에 이어) '가격재결정 명령'을 포함한 시정조치와 함께 임직원 고발 의견까지 냈다는 것입니다.

※ 추가 조사 현황: 공정위는 이번 가격 담합 외에도 이들 4개 사의 일부 거래처 입찰 담합 행위와 사료용으로 쓰이는 전분당 부산물 가격 담합행위에 대해서도 별도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4. 앞으로 우리의 장바구니 물가는 어떻게 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우리가 매일 사 먹는 빵값, 라면값이 내려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부 역시 이번 사안이 민생 물가와 직결된 중대 사안임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점검팀 2차 회의를 열고, 전분당과 앞서 적발된 설탕·밀가루 등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라면, 과자, 빵,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의 가격 동향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심의를 앞두고 전분당 업체들이 가격을 3~5%가량 인하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 제빵 업계도 제품 가격 인하를 발표하며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체감물가 안정 노력이 일시적인 눈속임으로 끝나지 않도록, 출고가와 소비자가, 단위가격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추가적인 불공정거래행위가 우려될 경우 신속히 현장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명한 소비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

이번 전분당 담합 사태는 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급자들의 시장 통제가 어떻게 소비자들의 지갑을 얇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부의 엄중한 제재와 끈질긴 모니터링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가공식품 가격 추이를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합리적인 소비를 실천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할 때 진정한 물가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역대급 조 단위 과징금이 실제로 확정될 수 있을지, 그리고 기업들이 소비자 가격 인하로 실질적인 반성의 태도를 보일지 앞으로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 결과를 예의주시해야겠습니다.